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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장 유명한 회화 기법 중 하나인 유화가 탄생하기 전까지 고대, 중세 서양미술의 기본 재료는 ‘템페라 물감’이었습니다. 라틴어의 ‘temperare(안료와 매체의 혼합)’를 어원으로 하는 템페라는 달걀노른자, 벌꿀, 무화과 즙 등을 용매제로 사용하여 색채 가루인 안료와 섞어 만든 물감 혹은 그것으로 그린 그림을 칭합니다.
템페라 기법에 사용되는 대표적 용매제들
(왼쪽부터) 무화과 열매, 계란, 벌꿀
중세 시대 화가들은 색채가 있는 광물이나 식물을 맷돌에 갈아 색채 가루인 안료를 만들고 이것을 용매(溶媒)와 섞어서 물감으로 사용했는데요. 우리가 유화라고 부르는 것 역시, 분말 안료를 기름에 개어 만든 물감을 사용해 그린 그림을 뜻합니다. 그러나 유화와는 달리, 템페라 기법에 사용된 용매의 종류는 앞서 말했듯 달걀노른자, 벌꿀, 무화과 즙 등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구하기가 용이하고, 굳는 속도가 빠른 달걀이 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템페라 기법의 역사
템페라 화법이 유럽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 또는 13세기 초로 추정되지만, 고대 이집트의 미라의 관, 파피루스에 그려진 그림, 그리고 이탈리아 분묘의 벽화 등 유화가 발명되기 이전의 고대와 중세 유채화의 상당 부분이 템페라에 포함됩니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 그려진 템페라화
반면 유럽의 템페라는 로마시대에 창시된 화법인 프레스코에서 발전한 기법인데요. 프레스코는 주로 벽화 제작 시에 사용된 기법으로, 덜 마른 회반죽 바탕에 물에 갠 안료를 채색하는 것을 말합니다.

프레스코화는 그림물감이 표면으로 배어들어 벽이 마르면 그림은 완전히 벽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쉽게 물에 용해되지 않으며, 따라서 수명도 벽의 수명만큼 지속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석고가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그림의 수정도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숙련된 기술자만이 그릴 수 있었습니다.
프레스코화 예시 : Giotto, <Lamentation (The Mourning of Christ)>, 1304 – 1306
반면 템페라 상대적으로 프레스코화보다는 건조가 더디고, 덧칠하는 것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엷고 투명한 물감의 층이 광택을 띕니다. 또 유화에 비해 잘 변질되지 않고, 갈라지거나 떨어지는 일도 없으며, 온도나 습도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빛을 거의 굴절시키지 않아 유화보다 맑고 생생한 색을 낼 수 있었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 <최후의 만찬> (아래 그림) 을 템페라 기법을 사용해 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수정이 불가능한 프레스코와 달리 템페라는 덧 그리거나 고쳐 그릴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Leonardo da Vinci, <The Last Supper>, 1495
그러나 템페라화 역시 몇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붓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하므로 색조가 딱딱해졌고, 그 때문에 수채화나 유화같이 자연스러운 효과와 명암, 톤의 미묘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들
중세 유럽 기독교가 성왕함에 따라, 템페라는 성화(聖畵)를 그리는데 가장 적합한 기법으로 평가받으면서 대표적인 미술 기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에 자연히 많은 화가들에 의해 수많은 템페라 종교화가 탄생하게 되었는데요. 그 대표작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템페라화의 대표작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1485
Fra Angelico, <Coronation Of The Virgin>, 1434 - 1435
Rogier van der Weyden, <St. Luke Drawing A Portrait Of The Virgin Mary>, 1435 - 1440
유화 기법 등장 이후의 템페라
이후 15세기에 들어서 얀 반 에이크 형제가 용매제로 기름을 사용하는 한층 발전된 기법을 선보이며, 마침내 오늘날의 유화용 그림물감이 개발되면서, 유화가 본격적으로 서양의 대표적인 기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얀 반 에이크의 유화 작품 : Jan van Eyck, <The Arnolfini Wedding>, 1434
그 후 한동안 템페라 기법은 소홀히 취급되었지만 소멸되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해왔는데요. 개성적 표현을 추구하려는 근대 회화사에서의 들어서는 독자적인 창조 기법으로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중세 템페라 기법의 맥을 이어가는 화가들이 있는데요. 오픈갤러리의 시원상 작가도 이러한 템페라 기법을 사용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템페라화
시원상, <A Landscape In Mind - walk forest>, 패널에 템페라/ 유채, 97x130cm, 2016

A Landscape In Mind - walk forest

시원상

97x130cm (60호)

시원상, <A Landscape in Mind '1996년 21개의 꿈'>, 패널에 템페라/ 유채, 163x450cm, 2011

A Landscape in Mind '1996년 21개의 꿈'

시원상

163x450cm (변형 500호)

시원상 작가는 템페라(tempera) 기법을 통해 불투명하면서 거칠게 마음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데요. 넓은 들판 위에 여러 이질적인 존재들이 배치하여, 우리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템페라화의 가장 큰 특징은 마르면서 점차 색이 더 밝아진다는 점인데요. 이는 마르면서 점차 색이 진하고 어두워지는 유화와는 명백한 차이를 보이곤 합니다. 이런 밝고 광택감 있는 색채는 이질적인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는 종교화에 어울리는 기법으로 인정을 받았었는데요. 시원상 작가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추상적이면서 환상적인 느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